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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산업에 떨어진 핵폭탄 바다이야기

바다이야기 story


바다이야기의 종말


2006년 7월 초, 바다이야기 생산 및 유통을 담당하던 G모사의 사장 최 모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바다이야기는 누가 뭐래도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들었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패기(?)를 부렸다. 그럴 만 했다. 바다이야기로 번 돈으로 모회사 A사는 승승장구 하고 있었고, 자회사인 G사도 일반 전자통신 기업과의 합병을 준비하는 등 분주했다.


최 모 사장의 패기에 넘치는 인터뷰 직후,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는 ‘바다이야기’의 제조사인 A사와 ‘황금성’의 제조사인 H사를 압수수색했다. ‘바다이야기’의 승률을 업주 마음대로 조작한다는 소문이 오랫동안 떠돌고 있었고, 검찰이 이를 포착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이 때 까지만 해도 ‘바다이야기’가 대한민국을 흔들 핵폭탄이 되리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가장먼저 단속을 맞은 곳은 스크린경마였다

수사는 점차 폭이 넓어졌다. 서울북부지검은 7월 7일 스크린경마 관련 업체 대표이사를 구속기소했다. 7월 중순에는 대검찰청이 전면적인 단속에 나섰다. ‘바다이야기’를 비롯한 사행성 게임은 이미 조직폭력배의 새로운 자금원이 되고 있었다. 이미 6월에는 부산지역 폭력조직 두목이 사행성 오락실 운영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전국 각지의 조직폭력배가 비슷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검찰이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게임과 오락실의 단속에 들어가며 미적지근한 대응으로 일관하던 정부도 태도를 바꿔 강경하게 나섰다. 경품용 상품권의 발행 제도를 폐지하고, 성인오락실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꿔 신규 개업을 원천봉쇄하기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 소식에 우회상장한 G사의 주가는 급락했다. 경품용 상품권을 발행하던 유명 업체 I사와 D사도 일제히 주가가 폭락했다.


정치 스캔들로 번진 바다이야기


이 시점까지 ‘바다이야기’는 아직 ‘사태’로 불릴 정도로 악화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8월 중순에 접어들며 바다이야기는 정치 스캔들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8월 8일, 차관 인사에서 문화관광부 Y차관이 경질되었다. 청와대가 밝힌 Y차관의 경질은 신문유통원 관련 업무 등 차관의 업무에 태만했다는 이유였다.


반면 정치권에는 Y차관이 인사 관련 청탁을 거부했고, 또한 ‘바다이야기’ 관련으로 강경한 입장을 취해 와 ‘외압’으로 경질 당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Y차관은 8월 6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2년 문화산업국장 시절부터 스크린 경마와 릴게임의 등급분류 불허를 해 달라고 영등위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실제로 Y차관은 경질 당하기 직전인 5월에 “사행성 게임에 대한 전쟁을 선언할 것”이라고 선언했기에 이런 의혹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 “Y차관의 경질은 바다이야기와는 상관 없다”고 밝혔지만, 야당 국회의원들이 잇달아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수사가 시작된 직후 텅 비어버린 바다이야기 생산공장


그이후...


영등위에서는 Y차관의 주장에 대해 “문화관광부에서 요청을 받은 적이 없고, 오히려 문화관광부가 규제 강화를 방해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Y차관과 문광부, 영등위가 진실게임을 벌이기 시작한 사이 감사원도 ‘바다이야기’ 인허가 관련 전면적인 감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갈수록 사태는 커져만 갔다.


8월 18일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직접 언론사 간부와의 비공식 오찬 자리에서 “내 임기 중 생긴 문제는 성인 오락실과 상품권 문제뿐이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 발언 직후, 대통령의 친조카가 ‘바다이야기’와 연루되어 있다는 방송 보도가 나오며 본격적으로 정치 스캔들로 비화하기 시작했다. G사가 코스닥 우회상장을 위해 사들였던 W사의 이사로 대통령의 친조카가 재직했다 인수 직후 사임한 것이 알려지며 권력 유착 비리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청와대는 “해당 인물은 회사가 바다이야기 유통업체에 인수되어 오해 받을 것을 우려해 퇴사했다”고 해명에 나섰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당시 대통령 팬클럽 N의 대표를 지낸 M씨가 연루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M씨가 ‘바다이야기’를 통해 대선자금을 벌었다는 이야기였다. M씨는 이런 루머에 대해 법적 대응 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섰다.


윗 사람들끼리의 일인데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까지 피해가 오겠느냐..


8월 20일, 검찰은 ‘바다이야기’로 승승장구하던 A사 차 모 사장과, ‘자부심’ 발언을 했던 G사 최 모 사장을 사행행위규제 특별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황금성’ 제조사 사장도 같은 혐의로 구속되었고, 그 외 관련 인물 11명을 불구속기소 처리했다. 같은 날 청와대는 “대통령의 조카와 바다이야기는 무관하다. 바다이야기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수사해야.”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혔다.


놀랍게도 이 와중에도 ‘바다이야기’ 게임장은 여전히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파문 이전보다 오히려 손님이 늘었다는 언론 보도까지 등장했다. ‘바다이야기’의 전면적인 붕괴를 앞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내일은 없다는 듯 바다이야기에 돈을 쑤셔 넣고 있었다. 그렇게 온 나라가 바다이야기에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불똥은 엉뚱한 곳에도 튀었다. 초등학교 앞에 있던 이런 '메달 게임기'가 바다이야기 여파로 지탄받기도 했다

.그 다음에 터진 의혹은 영등위가 로비를 받고 ‘바다이야기’심의를 통과시켜줬다는 의혹이었다. 경품용 상품권 인정 절차에서도 로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8월 21일은 임시국회가 열리는 날이었고, 야당은 ‘바다이야기’를 핵심 쟁점으로 삼겠다고 벼르고 나섰다. 여당은 근거 없는 소문으로 정치공세를 벌이지 말라며 반격에 나섰다. 예상대로 임시국회가 시작되자 마자 ‘바다이야기’는 격렬한 정쟁의 주제가 되었다. 야당은 정치권이 얽힌 ‘배후 거물’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명숙 당시 국무총리는 8월 24일 장관회의를 열고 “사행성 도박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날 검찰은 상품권 발행사를 압수수색했다. 모두가 바다이야기와 얽혀 있었다.


대한체육회장의 동생이 바다이야기 게임장을 운영하다 적발되었다. 야당 소속 모 의원이 게임 상품권 발행 업체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영등위가 왜 그리 허술했는지도 금방 드러났다. 영등위에 근무하던 공익근무요원이 오락기 제조업체에게 뇌물을 받았다가 적발되었고, 성인오락기 업체 임원의 처남이 영등위 예심위원으로 위촉되었다가 들통나 해촉되는 촌극도 있었다.

영등위와 성인오락실의 관계는 생각보다 깊었다. 영등위 예심위원 중 일부가 아예 성인오락실 업주와 동업관계로 들통나기도 했고, 사퇴한 위원 중 어떤 사람은 앞서 언급했던 G사에 취업하기도 했다. 이들은 사퇴 과정에서 컴퓨터에 들어 있던 업무 파일을 모두 지워버리는 등 증거인멸까지 시도했다. 7월 검찰의 수사 이후 두 달 만에 바다이야기는 대한민국을 삼킨 불길로 번져 있었다. 여당 의장까지 “바다이야기 관련 정부의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나설 정도였다. 경찰은 대대적인 성인오락실 기기 압수에 나섰다. 성인오락실 업주들은 “우리가 죽더라도 공무원과의 유착관계를 폭로하고 같이 죽겠다”며 역습에 나섰다. 8월 29일, 한명숙 당시 국무총리가 국무회의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다음날인 30일에는 검찰이 아케이드 게임 업체 A사의 대표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어, 31일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특별회견을 통해 “국민들에게 너무 큰 걱정을 끼쳐드린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마음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같은 날,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 회장 김 모씨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김 모 회장은 경품용 상품권과 영등위 심사과정에 개입해 로비를 한 혐의로 체포된 상태였다. 김 모 회장은 30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마련해 전방위에 살포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아케이드 게임 업계 전체가 바다이야기에 관련되어 있다는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출범 게임 전문 등급 분류 별정기관인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출범이 가시화 된 것은 이 ‘바다이야기’ 정치 공세가 한창 벌어지던 2006년 늦여름이다. 이 시기 정치권에서는 폭로전이 시작되었다. 여당은 게임업체로부터 행사 후원금을 받았다며 야당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고, 야당은 여당 문광위 의원들을 제소했다. 이 와중에 당시 여당 소속 J의원은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조카와 바다이야기의 연관성은 없으며, 바다이야기 사태는 정치인들과의 유착보다는 영등위 심사의 미흡함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주장했다. 그는 법률 개정을 통해 ‘게임물 등급 위원회’를 신설하고, 앞으로 사행성 게임에 대해 강력하게 단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겠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주장대로 영등위가 게임물 등급분류에 있어 고의적이든 아니든 무능함을 드러낸 것은 확실했다. 영등위의 밑에 있는 아케이드 소위원회는 바다이야기 심의에 있어 무능 그 자체였다. 이들은 ‘패치’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에 게임 업체가 낸 설명서에 따라 대충 심의하고, 나중에 게임 업체가 ‘패치’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바다이야기의 여파로 게임물등급위원회가 2006년 가을, 출범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영등위 구성원 자체가 부패했다는 문제도 있었다. 아케이드 소위원회 의장은 사행성 게임기 제조업체로부터 억대의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가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기까지 했다. 하다 못해 공익근무요원까지 게임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가 적발될 정도였다. 온 나라를 들쑤셔 놓은 영등위 등급분류 체제는 더 이상 존속이 불가능했다. 사실 게임업계는 ‘바다이야기’ 사태 직전까지 민간 자율심의를 원하고 있었다. 2002년 말, MMORPG L 모 게임의 등급분류를 둘러싸고 N사는 영등위와 신경전을 벌였다. 영등위는 L게임의 PK를 문제삼아 18세미만 이용불가 등급을 내리려 하고 있었고, N사는 12세 이용가로 등급분류를 신청했다. N사의 사장이 직접 나서 자율심의를 촉구했다. 2002년 9월, 한국게임산업연합회가 창설된 것도 자율심의를 원하는 게임업계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바다이야기 사태로 게임업계가 목소리를 낼 기회는 사라졌다.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던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에 따른 후속조치는 바다이야기 사태로 급물살을 탔다. J의원의 말 그대로 2006년 10월 30일 게임물만을 관리하기 위한 전문 기관인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출범했다. 출범과 함께 이전까지 등급분류를 받은 모든 게임을 다시 분류했다.


바다이야기의 망령은 지금도…


그렇게 바다이야기 사태는 2006년 7월 7일 이후 반 년 만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포스트 바다이야기’를 노리는 사행성 게임은 정말 끈질기게 등장하고 있다. 멀쩡한 퍼즐 게임을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사행성 게임으로 변신하게 만든다든가, MMORPG 등의 온라인 게임으로 교묘하게 위장한 릴 게임이 적발되기도 했다.


모바일 게임 시대가 열린 이후에는 자율심의라는 법의 허점을 악용해, 모바일 기기에 도박 앱을 다운받아 즐기는 ‘아이패드방’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들은 초기투자부담이 적다며 대놓고 가맹점을 모집하다가 적발되었다. 간판 없는 건물 안에 사행성 게임기를 갖추고 몰래 영업하다 적발되는 곳도 부지기수다.


바다이야기의 망령은 엉뚱한 곳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과거 게임물등급위원회는 이상한 등급분류(?)로 악명이 높았다. 아무리 봐도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이 아닌 게임에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분류를 내려 물의를 빚었다. 이유는 게임 내에 포함되어 있는 도박 요소 때문이다. 룰렛이나 카드게임이 미니게임 형식으로 들어가 있으면 얄짤없이 청소년 이용불가 행이었다.

유력 게임회사가 바다이야기 사태 당시 치고 빠지기를 했다는 의혹을 현재 수사중이고, 바다이야기 사태 당시 압수당했던 상품권의 처리 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모 대선 후보는 “바다이야기로 도박공화국을 만든 것이 좌파정권 10년의 적폐다”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 지긋지긋한 바다이야기의 망령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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